우리나라에 개고기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푸아그라가 있습니다. 애증의 존재. 누군가에겐 야만적인 풍습이고, 누군가에겐 전통 문화인... 우리나라에서 개고기 안 먹는 것만큼이나 프랑스에서도 푸아그라를 평상시 밥상에서 찾아보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슈퍼마켓이나 정육점, 시장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는 있습니다.
요즘이 한창 시즌이죠. 연말연시 파티하면 떠오르는 메뉴 중에 푸아그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빠지지 않고 올 노엘(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노엘이라고 부릅니다)에는, 혹은 올 연말 파티에서는, 푸아그라 2+1... 이런 까르푸의 광고가 나옵니다.
푸아그라도 약간 우리나라 개고기처럼 세대 차이가 확연한 것 같아요. 연세 있으신 세대들은 "그래도 연말엔 푸아그라가 있어야지" 해서 굳이 상에 올리시죠. 제 시부모님들도,,, 특히 시어머님이 간혹 가다가 거위 생간을 직접 사서 푸아그라를 직접 집에서 만드시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셔서 저나 젊은 친지분들은 조금 경악을 하곤 하죠. (게다가 그건 맛도 없ㅇ...)
하지만 고기조차 잘 안 먹는 요즘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푸아그라는 정말 혐오스러운 존재입니다. 제 프랑스 시댁에도 비건들이 존재하여, 이런 가족 행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계십니다. (싸워요. 아니면 남들 열심히 차려 내놨는데, "이런 야만인들"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구석에 앉아 물만 홀짝 거리고 계십니다.)
그럼 도대체 왜 왜 왜 프랑스인들마저도 푸아그라를 잘 먹지 않을까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푸아그라의 뜻은 말 그대로 기름진(gras) 간 (foie)라는 뜻입니다. 거위에게 과식을 시켜서 간을 비대하게 찌운 후에 그 간을 꺼내 먹는 거죠. 비대하게 찌우기 위해 거위의 목구멍에 깔때기를 끼워서 곡식을 막 쏟아 붙습니다... (아 쓰면서도 싫다) 그 기법을 바로 가바쥬(gavage)라고 부릅니다. 가베(gaver)라는 동사에 "누군가에게 억지로 많은 것을 먹이다"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과하게 들이대서 부담스럽게 하다"라는 의미까지 확장됩니다.
Tu me gaves! (bord*)이라고 하면 "너 지긋지긋해" (망*) 정도의 의미죠
유튜브 검색창에 gavage canards라고 치시면 영상이 나올 거예요. 네, 여기 굳이 담지는 않을게요... 보고 싶은 분들만 찾아보세요. 이렇게 가바쥬한 오리/거위의 간은 1kg가 넘습니다. 간이 그렇게 무거워진 거위/오리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 해요 배불러서...(눈물)
따라서 동물 복지에 민감한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푸아그라는 동물 학대의 결정체인 거죠. 그래서 잘 안 먹으려고 하고, 푸아그라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정말 태연자약하게 푸아그라 즐기시는 프랑스인들도 많아요. 심지어 제가 아는 어떤 프랑스 지인은 "아 내가 직접 가바쥬 하는 걸 봤는데 말이지, 거위가 더 달라고 주인을 따라다니더라니까. 동물 학대라는 것도 좀 과장된 말인 것 같아"라면서, 푸아그라를 옹호하기도 했어요. 더불어 가바쥬 기법은 프랑스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때부터 해오던 오래된 인류의 관습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잘 만들면 맛있긴 하더라고요? 네... (하지만 "너 그거 평생 못 먹어" 한다고 슬플 것 같지는 않아요. 세상엔 그것 말고도 맛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셰프들에게 사랑받는 재료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어떤 프랑스인들은 가바쥬 안 하고 푸아그라를 만들 수 없을까 까지 생각해 냈어요. 원래 가바쥬한 오리/거위들은 날아다니지도 못하고 그냥 농장에 갇혀 살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프랑스 남부의 어떤 연구 단체에서는 철 따라 장거리 비행하는 거위의 본능을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간이 커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거위들은 억지로 가바쥬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많이 먹으면서 간을 조금씩 키워나갑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시간도 있고요. 그렇게 해서도 간이 300g~400g 정도까지 자란다고 해요. 물론 기존 '가바쥬'기법보다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로 인해 얻어낼 수 있는 간의 양도 적으니 가격도 2배 이상으로 비쌉니다. 게다가 맛도 기존의 푸아그라보다는 좀 덜 기름진 맛이라고 해요.
"하지만, 어차피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면, 기왕이면 돈을 더 내고, 동물을 학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육해서 얻은 푸아그라를 먹고 싶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 사육법을 발견해낸 연구팀 대표의 주장이고, 많은 거위 농가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위를 기르는 농가 입장에서도 사실 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기왕이면 동물들이 행복하게 살다 가는 쪽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라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나 같으면 안 먹고 말겠다'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무래도 여전히 프랑스인들의 푸아그라에 대한 애정이 크기는 큰 모양입니다. 자, 프랑스인들에겐 애증의 푸아그라, 여러분들은 먹어보고 싶나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