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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육아

프랑스에서 손님 맞이하기

by 에페메르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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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하는 재미있는 설문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식사 시간이 가장 길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밥을 먹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식사를 하는 것일까?


OECD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하루에 총 2시간 13분을 식사하는 데 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보다도 오래 걸린다. 빨리 먹고 후딱 후딱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깜짝 놀랄만큼 긴 시간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 결과를 보고 조금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랐다. “하루에 2시간 13분밖에 안 걸린다고? 한 끼에 2시간 13분이 아니라?” 아닌게 아니라 집에 저녁 식사 손님을 한 번 맞으면 보통 8시에 시작해서 빨리 끝내면 자정쯤에 식사가 끝나니까… 아마도 평일에 급히 먹는 시간을 고려하여 평균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경험상, 프랑스에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거나 초대를 해서 식사를 하는 경우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 이상 걸린다. 그나마 일찍 끝나는 점심 식사의 경우에도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정도 걸린다. 그 이하로 진행되는 경우는 필자의 경험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바캉스 중에는 한 시쯤 점심을 먹기 시작해서 저녁 다섯 시쯤 식사를 마무리했다가 2시간 후에 바로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 (말 그대로.. 먹다가 끝나버린 하루. )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기에 이토록 식사 시간이 길어지는 것일까? 평균적으로 식사 시간을 총 6가지 단계로 나눠보면 쉽다. 보통 저녁 식사 초대 시간은 저녁 8시가 표준이다. 혹시나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거나, 그다음 날이 평일인 경우에는 7시나 7시 반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초대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예의로 본다. 너무 정각에 칼같이 도착하면 혹시나 초대한 가족이 다 준비를 못 마쳤을 까봐 배려해주는 것이다.

초대 손님이 도착하면 손님들의 옷과 가방을 정리해주고, ‘아페로(apéro)’를 시작한다. 아페로는 식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아페리티프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본격적인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아니라 테라스나 거실 소파 등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아페로에는 간단한 감자 칩이나 땅콩에서부터 말린 소시지,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핑거푸드와 가벼운 주류(화이트 와인이나 맥주)가 동반된다. 이때 상당한 눈치 게임이 시작되는데,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최대한 적게 먹으면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려고 한다. 술에 약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페로 시간만 길게는 한 시간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때 너무 빨리 많이 먹고 마셔버리면 본식까지 가지 못하고 뻗어버리게 된다.

바람직한 아페로의 모습



아페로가 비워지면 집주인이 적당한 타이밍에 “테이블로 가시죠”라고 신호를 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는데, 전식(entrée)을 따로 먹기도 하고, 바로 본식(plat)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때도 가장 중요한 태도는 느림과 대화다. 물론 먹는 것에 대한 칭찬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식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절은 마치 자신이 먹는 것보다 대화에 더 여념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지금 먹고 있는 것 보다, 나와 먹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최대한 보여줘야 한다는 듯, 사람들은 저돌적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그렇다고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대화만 하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쉼 없이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의 식사 시간은 길고 또 시끄럽다. 식사 시간이 조용할수록 그 식사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식 요리


프랑스 식사 중에는 느림의 미학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긴 식사 시간 동안 과식을 하고 싶지 않다면 더욱 중요하다. 괜히 할 말이 없어서 빨리 접시를 비워버리면, 바로 집주인이 더 먹겠느냐며 권한다. 와인잔도 비워버리면 어느 새에 바로 다시 채워준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 필자도 식사를 빨리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프랑스식 식사 자리에서 너무 과식하거나 과음을 해서 굉장히 힘들어했었다. 프랑스식 리듬이 몸에 익어서 긴 식사 시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즐기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가 필요했던 것 같다.

치즈 플레이트


본식까지 마치면,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계들이 남아있다. 하나는 치즈 플레이트를 돌리는 순간이고, 그다음은 디저트다. 보통 치즈는 3-4가지 정도를 준비하고, 간단한 샐러드와 빵을 곁들이는 경우가 가장 교과서적이다. 보통은 한 번 조금씩 잘라서 덜어 먹고 난 다음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다시 덜어 먹기 때문에 치즈 먹는 시간도 30분 이상 걸린다. 참고로 치즈 플레이트는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상온에 맞춰진 치즈의 풍미가 더 깊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디저트


치즈가 끝나면 디저트 시간이다. 디저트가 마무리될 쯤 집주인은 눈치껏 커피나 차를 마시겠냐고 권한다. 아니면 초대 손님의 취향에 따라 디제스티프라고 하는 독한 술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단계를 마무리하고 나면 새벽 2시가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식사를 다 마치고 일어서는 순간도 처음에 필자에게는 굉장히 생소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눴는데도, “이제 슬슬 가지”하며 슬그머니 일어서면서도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마치 콘서트 후 앙코르를 보는 것 같다. 음악가도 관객들이 앙코르를 불러줄 것을 알면서 굳이 무대를 떠나고, 관객도 음악가가 돌아와서 적어도 한 두 곡 정도는 연주해줄 것을 알면서 굳이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것과 같다.


초대 손님은 “이제 가야겠네” 하며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고 집주인은 초대손님의 옷과 가방을 갖다주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또 꺼낸다. 그러면 옷을 입고 가방을 메는 동안 또 한참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게 또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아주 천천히, 현관 쪽으로 한 걸음씩 떼어놓는다. 마침내 현관문이 열리고, 그 문을 또 나서서 길가에 설 때까지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야 결국, 어깨를 툭툭 치며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더욱더 재밌는 것은 그렇게 정겹게 식사를 마치고 난 사이라도 초대손님들은 초대손님들끼리, 또 집주인들은 집주인들끼리 서로에 대한 애정어린 뒷담화까지도 아끼지 않는다는 것. 프랑스 사람들의 입은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하기 위해서 타고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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